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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기> 제8회 법무사시험 최고령합격자 이원재님의 공부방법론

 


 

 

 

 

 

 

 

 



    법무사 이전호  전재 및 배포는 허락하지 않으며 링크는 동의없이 무제한 허락합니다

     



"50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법무사 이전호  이원재 / 제8회 법무사시험 최고령 합격(고려대졸) - 3년6개월 정도의 수험기간.


 


법무사 이전호    글을 시작하며
 

    나이 오십이 넘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며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법무사라는 영역에 무모한 도전이 결실을 맺어 시험출신으로서는
    막내 법무사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7개월이 넘었고 이제 곧 후배기수도 생기게 된 것을
    보면 시간은 금세 흐르기 마련인가 보다.

    자격증이 돈 벌어주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이제는 영업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아직도 정착하려면 더 많이 노력해야 하고 영업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시험공부 할 때 보다는 백번 낫다는 생각으로
    현재에 만족하며 산다.

     

법무사 이전호  법무사시험 이전의 역정
 

    운이 좋아서 법무사시험에 합격은 했지만  생각해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나는 법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법무사시험이 얼마나
    어려운 시험인줄 몰랐기에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랜 기자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날들,
    그리고 케이블 TV가 생기면서 그쪽으로 옮겨서 살아온 몇 년간 나는 돈과는 크게
    인연이 없었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재미있게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1998년, IMF 한파는 나에게도 실직자란 오명을 안겨주면서 내가 그동안
    해온 일들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했고 4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벌어 논 돈도 많지 않은 실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법무사 이전호  법무사시험에의 인연

 

    그러던 중에 우연히 자격증을 따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의논하다가 친구가 우선 공인중개사를 따보라는
    권유를 해 다른 자격증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자격증을 따면 재고가 없는 장사를 할 수 있고 남의 밑에서 월급을 타먹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마음에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무슨 자격증을
    딸 것인가로 또 한동안 고민을 해야 했다.

    비법학도로 대학을 졸업한 지도 한참 된 그 때 사법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변리사, 감정평가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의 자격증 중에서
    하나를 도전해 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지만 막상 책을 잡고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각기 다른 자격증의 공부방법이 어떻게 틀린지 무엇이 어려운지도 모르고 이에 대해서
    의논할 상대도 없이 망설이면서 한참을 지내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법무사도
    공부해서 자격증을  딸 수 있느냐면서 기왕 할 바에는 법무사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하기에  법무사를 준비하기로 결정을 하고 말았다.

    사실 나로서는 여러 자격증 시험 중에서 법무사시험이 시험 과목은 가장 많고 뽑는
    인원은  제일 적어 법무사는 젖혀 논 상태였다. 그러나 가장이 돈 벌어 올 생각을 안 하고
    공부를 하겠다고 할 때 기꺼이 동의해 준 것 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할 처지에서
    아내가 원하는 공부를 못하겠다고 할 수 없어 법무사를 준비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아내는 때마침 처갓집 일로 법무사를 만나  상담을 한 바 있는데 그 때 만난 법무사가
    인상이 좋은 때문인 지 법무사가 좋은 직업처럼 느꼈다는 것이었다.

    다른 자격증과 법무사가 공부영역이 다르지만 어느 것이나 나에게는 똑같이 생소한
    공부였고 나에게 어려우면 남들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과 어느 것이나 열심히 하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구나 아내에게 얘기를 들은 뒤 얼마 되지 않아 가장 절친한 친구중 하나가 나에게
    법무사 시험공부를 권했고 또 큰 누나도 법무사 시험공부를 해보라고 권해 법무사를
    공부하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법무사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한 나로서는 2주 동안에 가장 가까운 사람
    3명으로부터 법무사를 해보라는 얘기를 듣는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마침 그 때는 오랫동안 나가지 않던 교회를 다시 나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해서
    신의 계시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법무사 이전호  법무사시험에의 도전


     

    법무사로 공부방향을 결정하고 공부를 시작한 것이 1999년 1월,
    우리나이로  47살이 된 해였다.

    막연히 2001년쯤이면 합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우리나이로 50살이면 법무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었다.

    동네에 있는 책방에 가보니 법무사 민법 책이 있기에 그 책을 사가지고와  
    집 근처에 있는 군포시립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방법을 모르는 중에서도 민법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도서관이 열려있는 동안은 도서관에 있기로 작정하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도서관이 열리는 시간에 출근해서 폐관 시간까지 도서관을 지키면서 책을 봤지만
    처음 접하는 생소한 법률용어들 때문에 좌절감을 맛보면서도 무작정 책에 매달렸다.

    봐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봐야한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면
    노트에 쓰고 외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지만 그 때는
    모두가 중요한 것으로 생각됐고 또 전부 다 외어야 할 것들이었다.

    겨우 겨우 민법을 한번 보고 다음은 형법을 시작했는데 이때가 시험 준비 초기에  
    큰 고비를 맞게 되었다.   총론은 모교 교수라는 이유 하나로 김일수氏의 책을 선택
    했는데 첫날 책을 본 시간만 13시간이 넘는 데도 고작 30여 쪽을 읽는데 그쳤다.

    둘째 날은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50여 쪽을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머리에 쥐가 나는 것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진도로는 형법총론, 각론을 한번 보고  문제집을 한번 보면 시험 때가 되리라는
    초조함이 나를 사로잡았지만 그냥 책과 씨름하다 보니 형법도 넘기게 되었고
    각 과목마다 어려움을 혼자 해결하면서 1회독을 한 것이 4월 말쯤 인 것 같다.

    그 때는 철저히 혼자였던 시간이었다. 실업자라는 것이 창피해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은 것은 물론이고 도서관에 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학원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무식하게 책에만 매달렸던 시간이었다.

     민법 책이면 똑같은 민법 책인 줄만 알았지 저자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도
    몰랐고, 책을 신림동에서 사는 것도 모르고 법무사시험 공부하는 사람들도 신림동에서
    공부하는 것도 모르는 등 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야했다. 예를 들어서 각 죄의 형기도 다 외워야
    하는 것으로 알았고 헌법책에 나오는 외국사람들 이름을 외우느라고 아까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형법 총론은 김일수, 각론은 이재상, 문제집은 배종대교수의 책으로
    결정하는 등 공부 방법도 엉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남이 하는 것 이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절박감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녁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저녁은 도서관이 끝난 뒤 집에서 먹기로 하고 집에 와서도 새벽 2시까지는 책을 보았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처음 도전한 5회 1차 시험.

    그 해 커트라인이 80.5점이었고 시험결과는 75점.


     

법무사 이전호  1차시험의 합격과 2차시험의 불합격



    그래도 완전한 초보가 6개월 동안 공부한 것치고는 잘 본 것이라고 자위하며
    다시 공부에 매달렸고 6회 1차 시험은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동안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과도 안면이 생겨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도
    있게 되었고 어느 책이 좋은 책이라는 나름대로의 안목도 생기게 되었다.

    6회 2차 시험을 경험 삼아 본 뒤

    2차 공부방법을 익히기 위해서 한번은 학원 강의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제일 먼저 시작하는 2차 종합반 1순환코스에 접수해 각 과목을 한 번 씩 들은 뒤
    또 다시 도서관에서 혼자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2차공부도 결국 혼자서 공부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과목별 정리를 잘해서  그 것을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회 2차 시험에서 어이없게도 낙방을 하고 말았다.  

    혼자서 공부하다 보니 모두 중요한 것 같고 공부하는 요령도 부족해 너무 많은 것을
    끝까지 가지고 가게 됐고  이것이 공부하는데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시험장에서 시간 배분에 실패해 민사소송서류를 다 쓰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 등기서류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해 결국 2개의 서류 때문에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법무사 이전호  재도전과 동시합격

     

     우리 나이로 50살에 법무사가 되리라는 당초의 기대도 사라졌고 다시 도전해서 꼭
    붙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없어 망설이다가 그 동안 공부한 것이 아까워 1년만
    더 도전해보겠다는 약속을 아내와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다시 시작해야하는 1차 시험 부담도 있었고 반드시 동차로 합격해야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해 공부하는 내내 아내와 2년을 약속할 것을 하는 후회도 여러 번 했다.

    2차 책을 볼 때는 이러다 1차도 안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초조함에 사로 잡혔고
    1차 공부를 할 때는 지금 막차들은 이런 공부 안할 텐데 하는 생각에 또 초조해야 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하면 진짜 붙을 수 있을까하는 자신감의 상실이었다.
    7회 시험까지는 열심히 하면 반드시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 결과가 낙방으로 나타나고 마니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붙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또한 책을 보면 다 아는 것 같은 생각에 공부가 지겨워 지기 시작해 애를 먹기도 했다.
    이 때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콩나물은 자란다는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이니 후회를 남기지 말기 위해 죽기 살기로 해보자는 각오로 버텼고
    또 시험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만 합격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예의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2차 시험을 얼마 안남기고 있은 월드컵 축구 한국 경기도 전반전은  안보고 후반전 만
    보는 것이 시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공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시험은 철저히 소수의 승자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에 소수가 되기 위해서 애를 쓴 것이다. 결국 나는 운이 좋은 소수의 편에
    서게 되었고 반드시 1년만 더하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법무사 이전호  법무사시험 후기

     

    1차 전 과목을 요약해서 정리하고 2차 전 과목의 서브노트를 작성해 놓았던 것이
    동차로 합격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것 같다.

    다만 1차를 처음 시작할 때와 2차 마지막 시기에 학원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다소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고  수험기간도 많이 단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번도 나를 실업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학을 졸업하는
    데도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데  나이 들어서 새로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몇 년이라는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용기를 북돋아준 아내는 내가 돈을 못 벌어
    오더라도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하지만 돈도 많이 벌어다주는 남편이
    되고 싶다.

    거짓으로 쓸 수 없다며 학교에서 조사하는 집안 환경 조사서에 아빠의 직업을 공부
    중이라고 써서 아빠에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새봄, 새롬 두 딸에게 이제 자랑스럽게
    아빠 직업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고맙다, 이들이 늦은 나이에 도전한 아빠를 보고 결코
    좌절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붙을 때 까지는 부담된다며 집에 잘 오시지도 않고 새벽기도를 다니며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신 89살의 노모를  이제 내가 모시게 된 것도 합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경제적,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누나들에게 어느 정도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게 된 것에 너무 감사드린다.

    공부방법론으로는 나이가 많다는 것은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외우는 데
    약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암기에 주력했다. 특히 헛갈리는 개념은
    두문자 등을 활용해서라도 반드시 외우려고 했다.

    그리고 암기와 이해는 별개의 개념이 아니고 암기를 많이 하면 이해도 빨라지고 잘
    이해하고 있으면 암기도 잘 될 수밖에 없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많은 것이 시험공부에서 약점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은 아니며 바로 지금이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린 나이라는 것을 항상
    느껴야 한다는 말을 늦은 나이에 법무사에 도전하시는 여러분들께 꼭 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도 떨어질 수는 있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고 붙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47살의 나이에 불확실한 시험의 세계에 뛰어든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위안하며
    나는 이제 50살에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당초 계획인 우리나이로 50살이 아닌 만 나이 50살이지만...

 

     

 

 


법무사 이전호의 법률정보
 

 

이전 : <자료> 법무사시험제도 변동에 따른 선발예정인원 및 합격자결정방법론 안내 (사견추가)
다음 : <공지> 법무사법시행규칙 개정과 법무사자격심의위원회의 개최에 앞선 법원의 국민의견수렴 안내
2003/11/1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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